오늘의 세계사

오늘의 세계사 - 361년 12월 11일

수달곰 2023. 12. 11. 15:51

1. 오늘의 세계사 시작해 봅니다.

 

이 글은 calendarium 앱에서 요약이 되어 있는 오늘의 세계사에 제가 찾아보고 제 나름의 지식으로 풀어나간 이야기를 정리해 보는 곳입니다. 물론 저도 다 알수 있는 내용은 없어서 영문 위키디피아를 참조했고, 잘 모르는 단어는 여러 번역기를 돌려서 정리해본 것입을 미리 말씀해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틀린 내용이 있으면 주저없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오늘의 Calendarium 앱

 

In 361, Julian enters Constantinople as sole Emperor or the Roman Empire.

 

해석하자면 361년에 율리아누스가 로마제국의 유일황제로서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3. 율리아누스가 누구인가?

1)     황제 등극 전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에서는 배교자 율리아누스(Iulianus Apostata, Julian the Apostate) 라고 불리는 황제로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매우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황제이죠.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인 율이아누스 황제는 배다른 형제인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라는 이복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사망후 콘스탄티누스 황족 학살 사건이라는 거대한 숙청 사건이 일어난 콘스탄티우스 2세의 철저한 감시하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성장을 하게 되죠.

시기에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져서 각각 황제가 따로 있던 시기였습니다. 근데 서로마의 황제인 콘스탄스가 살해된 사건이 일어나서 콘스탄티우스 2세는 이를 진압하러 떠나게 되죠. 이때 동로마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갈루스를 대리인으로 앉히게 되고 자신의 누이동생과 결혼시켜서 생각을 먹게 만듭니다. 그러나 갈루스나 자신의 누이동생이나 둘다 콘스탄티우스 2세에 많은 불만이 있다는게 문제였죠. 서로 정치적으로 견제만 대니 동로마 쪽이 제대로 관리될 없었고 시리아 속주 총독이 살해되는 사태까지 생깁니다. 이상 두고볼 없었던 콘스탄티우스 2 황제는 갈루스를 숙청해 버리게 되죠.

이때 동생이었던 율리아누스도 불려올라옵니다. 당연히 혈육이니 의심을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다행히 변호를 해서 살아남게되고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의 서방부제로 임명되게 됩니다. 부제긴 하나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했겠죠 왜냐면 황족 학살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좋을 없었고, 당시 서방이던 갈리아지방( 독일지역)에서 제대로 지원을 기대하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갈리아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견실히 운영하고 라인강에서의 게르만인들을 격퇴했고, 갈리아 지역에서의 조세감면등으로 갈리아 지역의 부흥을 꾀했습니다.

 

2)      황제 등극

율리아누스가 황제가 등극하한 계기도 드라마틱합니다. 이때 콘스탄티우스 2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중에 국경 방어에 실패하면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때 율리아누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었습니다. 율리우스를 쉴드를 주던 율리아누스의 아내와 자신의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율리아누스에게 타격을 입힐 속셈이었죠. 그래서 율리아누스에게 정예병은 반을 빼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병사들이 차출을 거부해 버리고 율리아누스를 정식 황제로 추대해 버립니다.

율리아누스를 병사들이 황제로 추대하는 장면

 

 

그래서 사이에 내전이 필수불가결한 이때 율리아누스는 이때 묘책을 써서 도나우강 방어선을 손쉽게 점령해 버립니다. 기록에 의하면 율리아누스는 편지를 보내어서 계속 해명하면서 라인강 너머의 야만족이랑 1년동안 싸웁니다. 그리고 페르시아랑 콘스탄티누스2세가 강화를 하는듯 하자 번개같이 군사작전을 계시해 버린 것이죠. 이제 사이에는 한판 승부가 남아있었습니다. 아마 한판 승부가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재미난 역사 흐름이 되었을 텐데 문제는 콘스탄티누스2세가 덜커덕 죽어 버리고 그렇게 정치적으로 반목했던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지목해 버립니다. 왜냐면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유일한 남자 친척이 율리아누스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3)      황제로서의 업적

일단 율리아누스는 황실의 사치를 줄입니다. 또한 삼국지에서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환관을 여기서는 쳐내버립니다. 그리고 세제개혁도 하죠. 그리고 황실의 권위를 많이 낮춥니다. 하지만 평범한 앱의 이름에 올라와 있을만큼 율리아누스를 유명하게 만든게 바로 배교자 율리아누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반그리스도교 정책이었습니다. 일단 모든 종교를 공언해 버려서 밀라노 칙령이후로 엄청난 세를 불려나가던 기독교를 견제하고 외부로는 다른 종교들의 재기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면제였던 교회에도 세금을 부여해 버렸죠. 그리고 사회의 여러면에서 그리스도계를 대놓고 차별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역사가들은 율리아누스가 오래 살아남았다면 종교전쟁이 이전에 이미 일어났을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박해를 해도 불이익을 줘도 순교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지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세력확장을 막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그리고 율리아누스 황제를 마지막 로마 다신교적인 특성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마지막으로 마감됩니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4)     생애 마감

사산조 페르시아 전쟁을 수행하다가 무수히 많은 로마 병사를 전사시키고 본인도 퇴각하다가 입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이때가 363년 6월 23일 이었습니다. 이 전쟁실패는 엄청난 군사적 타격을 주게됩니다. 이는 사산조 페르시아도 마찬가지여서 주요 요지들을 다 파괴당하면서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죠 어느정도였나 하면 게르만족에의해서 로마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도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 원정이 완전한 실패가 아님을 알 수가 있는 대목이긴 하죠.

 

율리아누스의 최후를 묘사한 조각

 

 

 

5)     평가

배교자로서 강하게 남아있는 풍운아적인 모습이 있는 황제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숙청의 시기를 겪었고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또한 그 최후도 전쟁을 벌이다 죽은 참 풍운아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황제입니다.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과정이나 또한 그리스도교를 간접적으로 박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주도면밀한 전략가 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말 할 수 있죠.

주교체포와 로마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하는 율리아누스의 모습을 그린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