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사

오늘의 세계사 533년 12월 15일

수달곰 2023. 12. 16. 00:55

In Calendarium

 

Vandalic War : Byzantine general Belisarius defeats the Vandals, commanded by King Gelimer, at the Battle of Tricamarum.

 

반달 전쟁 : 비잔틴의 장군인 벨리사리우스가 트리카마룸 전투에서 겔리메르가 왕이 이끄는 반달 왕국을 패퇴시키다.

 

반달 전쟁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치세가 안정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서로마의 이전땅을 수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 시리즈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싸움니다. 20년 정도 유지가 되었죠. 그 전쟁중의 일부분인 트리마키움 전투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동로마 제국으 ㅣ영토 확장

1. 시작

533년 봄, 유스티니아누스가 사주하여 반달 왕국령내 사르데냐의 총독인 고다스가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연히 반달 왕국의 군주 겔리메르는 진압을 하러 가서 성공적으로 반란을 진압해 버립니다. 그러나 당연히 왕국은 비어있겠죠?? 왕국의 동부 트리폴리타니아 현재의 리비아 서부지역 - 에서 반달족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키레나이카 리비아의 동부 지역 의 동로마 군대가 출동하여 접수해 버립니다. 이제 트리마키움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죠.

반달전쟁 요약도

2.  진행

반달 왕국은 서고트와 동맹을 맺으려 하지만 서고트는 눈치만 보고 시간을 끕니다. 그리고 반달 왕국내에 단합이 잘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베르베르인들이 육상 국경을 위협하고, 이전 왕을 그리워하는 귀족들도 존재했죠.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는 달랐습니다. 동고트와 동맹을 강화하고 시칠리아에서 식량을 충분히 보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본국의 함대가 시칠리아에 도착해서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게 되죠.

근데 문제는 반달왕국의 국왕인 겔리메르가 이런 로마의 대규모 이동을 눈치를 못챘다는 것이죠 로마의 장군 벨리사리우스에게 전해진 소식은 왕이 한가하게 사냥이나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유능한 장군이면 이런 기회를 놓칠리가 없죠. 바로 아프리카의 북단에 대규모 군대가 무사히 상륙합니다. 그리고 작전회의를 열어서 카르타고를 함락하기로 하고 공성전 보다는 야전에서 상대하기로 합니다.

그다음 전쟁에게 이길려면 주변 주민들에게 미움을 사선 안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해방자라 칭하고 도둑질 한 자신의 군일들을 가중처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쟁을 위한 정지작업을 합니다. 병사들에게는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으로써 자중할 것을, 반달 귀족에게는 부당하게 폐위당한 전국왕을 복위시키러 온 거라고 합니다. 겔리메르도 전 국왕을 처형해 버리죠. 이제는 한판 승부만 남았습니다.

 

3.  전투

겔리메르는 아드 데키움에서 동로마 군대를 포위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벨리사리우스는 배수진이 아닌 우수진을 둡니다. 즉 오른쪽에 호수를 끼고 배치를 하죠. 당연히 전략을 겔리메르의 전략이 더 뛰어나지만 문제는 병사들의 숙련도 였습니다. 반달 왕국의 주력은 반란을 제압하러 사르데냐에 가 있는 상태이니 지금 왕국의 군대는 대부분 신병이었습니다. 일단 격전을 벌이지만 왕의 동생이 전사합니다. 이때 전사한 왕의 동생을 매장하는 동안 로마의 군대가 제대로 정비를 마쳐버립니다. 결국 본대가 대패하고 겔리메르는 누미디아로 피신하게 되죠

벨리사리우스의 원정대가 카르타고에 시민들의 환호와 함께 입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베르베르 부족장들이 카르타고로 와서 충성을 맹세하고 벨리사리우스는 이들에게 은관을 수여하게 됩니다.

갈리메르의 포위전략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죠 왕이 살아 있으니까요 겔리메르는 튀니지 서북부의 불라 레기아 에서 군세를 재정비하고, 당연히 사르데냐에 있던 반란 진압하러간 주 군대도 그쪽으로 불러 들입니다. 또 서고트에도 동맹을 요청했지만 이미 아드 데키움의 전투결과를 안 서고트 왕이 동맹을 할리가 없었겠죠. 벨리사리우스도 카르타고의 성벽을 보강하는등 전투를 대비합니다.

 

이제 카르타고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겔리메르는 공포 전술을 사용합니다. 카르타고로 이어지는 수도교를 끊어버린 거죠. 시민도 동요하고 같이 데려온 훈족 용병마저 혼란에 빠지자 일단 내통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신체관통형 처벌한후 공성전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회전으로 맞붙기로 합니다.

 

533년 오늘 (1215), 벨리사리우스는 반달왕국의 요새화된 야영지는 트리카마룸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기병대와 보병대를 세차례에 걸쳐 돌격을 명합니다. 여기서 사르데냐에 반란을 진압하러간 겔리메르의 또다른 동생이 전사하고, 이를 본 겔리메르가 전의가 껶여 버리죠. 그리고 800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누미디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동로마 군대는 약탈을 하는 등 규율이 무너진 모습을 보이죠.

 

4.  전투 이후

당연히 추격조가 배치되어서 겔리메르를 추격했습니다. 하지만 추격조의 기병대장이 죽자 겔리메르는 파푸아 산중의 메데우스로 도망을 가게되고, 벨리사리우스는 파푸아 산을 포위하는 동시에 전후 처리를 하게 됩니다. 일단 반달 왕국의 영토에 구장들을 보내어서 동로마 제국으로 편입시킵니다. 또한 동고트 왕국의 협상으로 시칠리아 서쪽의 릴리바이움을 항구를 동로마 제국으로 편입시킵니다.

한편 겔리메르는 산속에서 식량이 떨어질 때 까지 버티다가 결국 항복합니다. 결국 반달왕국이 멸망하게 되죠. 그러나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548년 정도에 안정되고, 578년 정도에 평정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전투가 시작이었던 셈이죠.

점령후 발행한 은화

5.  평가

반달 왕국을 실질적으로 멸망시키진 못했지만 로마의 북아프리카 재정복의 기틀을 다진 전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전투 그리고 전염병으로 인해 완전히 정복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