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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11, Roald Amundsen’s team, comprising himself, Olav Bjaaland, Helmer Hanssen, Sverre Hassel, and Oscar Wisting, becomes the first to reach the South Pole.

 

1911년에 로알드 아문센팀 아문젠 그자신, 올라프 비얄란드, 헬메르 한센, 스베르 하셀, 오스카르 비스팅 이 남극에 도달한 첫번째 팀이 되었다.

 

아마 극지 탐험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는 아문센이 처음으로 남극에 도달한 날이 1214일 이네요. 인류 최초의 남극점 정복기는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과 영국의 로버트 스콧 해군대령의 남극점 정복 경쟁으로 역사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이 역사에 대해 조금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문센에 대하여

노년의 아문센

1) 유년기

1872년에 보르게 지역에서 로알 아문센은 옌스 아문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때 아문센의 아버지가 조선소를 운영중이었기 때문에 조선소를 자주 드나들면서 수공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학업에서는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고는 하네요

14세때 일찍 아버지를 잃고 선원으로써 일을 시작합니다. 이때 영국 해군 존 프랭클린 경의 탐험 보고를 보고 탐험가의 꿈을 키웁니다. 또한 같은 국가인 노르웨이 출신의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의 귀향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을 읽었는지 의학공부를 시작합니다. 탐험가로 유명한 아문센이 의학공부라니 하겠지만 이때 익혀둔 의학지식은 나중에 탐험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93년에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다 이제 어머니 생각에 따라서 했던 의학 공부을 포기하고 해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요즘 말하는 피지컬이 장난이 아니어서 눈이 근시였는데도 불구하고 군의관이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합격처리를 해 버렸다고 합니다.

 

2) 청년기

이때 막달레나 호에 고용된 아문센은 항해사 시험에도 합격합니다. 하지만 탐험의욕이 과했던 그는 여러 스키투어에 참여했는데 이때 여러 죽을뻔한 경험을 하면서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실패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타수 시험에 합격하였고, 아문센의 탐험 욕구는 진짜 굉장해서 그 당시까지 여러 사람들이 개척하지 않은 여러 항로를 찾고 검색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또한 프랑스어 수업도 받게되죠. 이 당시 프랑스어는 해상공용어였기 때문입니다.

 

3) 탐험가로써

아문센이 그저 남극점을 정복한 탐험가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여러 탐험을 수행을 하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남극점을 정복했었던 것이죠. 여러 굵직굵직한 탐험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부분만 꼽아 보자면

 

- 벨지카 호 탐험

이때 최초로 남극 썰매 여행과 야영지 생활을 경험해 봅니다. 근데 여기서도 남극해가 얼어붙는 사고가 나자 괴혈병으로 몰살 직전 펭귄과 바다표범을 잡아서 위기를 넘깁니다. 이때 간신히 살아 돌아오게 됩니다.

 

- 북서항로 정복

이 탐험을 준비하면서 아문센은 엄청난 빚쟁이가 됩니다. 채권자들을 피해서 밤에 출발을 하게 되죠. 항로는 북대서양에서 캐나다 북부를 지나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항로였는데 아문센은 이전 죽을 뻔한 여러 경험들에세 철저한 준비를 했고 실제 극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에게서 극지방에서 사는법도 따로 익히기 까지 했습니다. 이 당시 대영제국이라고 불리는 영국은 불쾌해 했지만 다행히 이 업적으로 여러 강연들을 통해 빚쟁이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됩니다.

탐험에 사용한 마우드호

 

 

- 논란의 북극점

1907년부터 북극점을 도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1908년에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만미국의 피어리 제독이 먼저 도달했다고 당시에 보도가 되어 버립니다. 실제 아문센의 국가인 노르웨이의 위치상 북극을 우선에 두고 있었는데 북극점에 먼저 도달한 사람이 나와버렸기 때문이죠. 저도 어릴 때 미국의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아문센이 먼저 도달했다고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기록을 보면 북극점에서 40km정도 되는 지점까지만 접근했다고 합니다.

 

4) 남극 탐험

아무래도 아문센이라고 하면 남극점에 먼저 도달한사람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최강국이었던 대영제국의 로버트 스콧대령과의 경쟁관계로 이점이 더 유명해진듯합니다. 그것은 여기에 쓰기엔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나무위키 참조를 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남극대륙의 기후에 맞게 철저히 준비한 아문센은 다음의 일지로 남극 대륙을 정복 합니다. 출처는 위키디피아, 나무위키 입니다.

 

-   일지

1911 1 14, 15,938해리의 항해 끝에 프람 호는 발퓌시 만에 도착했다. 110마리와 9명의 대원이 육지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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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남위 80도에 최초의 비축물 저장 기지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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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른 비축물 저장 기지를 위해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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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위 81도에 비축물 기지 구축.

3
8, 남위 82도에 비축물 기지 구축.

이로서 남위 80~82도에 1.5 이상의 비축물을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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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기지에 틀어박혔으며, 아문센 일행은 4개월 동안 해를 거의 보지 못했다. 평균 기온은 영하 38, 최저 기온은 영하 60도에 육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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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에야 다시 해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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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아문센은 8명의 대원, 7대의 썰매로 남극으로 출발하였으나, 눈보라가 불어닥쳐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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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명의 대원, 4대의 썰매, 그리고 48마리의 개와 함께 남극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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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섀클턴이 세웠던 남위 88 23분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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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무렵, 아문센 일행은 남극점(남위 90)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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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귀향을 위해 출발했다.

1912
1 26, 99일의 기간 동안 1,400마일의 행군을 끝에 아문센 일행은 새벽 4시경 무사히 남극 기지 프람하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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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주 태즈매니아  호바트 목적지로 하여 프람 호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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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프람 호는 호주의 호바트에 도착하였다. 사이가 나빠졌던 요한센은 여기서 프람 호를 떠나 다른 루트로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몇 안되는 남극점 정복사진

 

결론적으로는 명의 대원도 잃지않고 생존하는데 성공합니다. 경쟁자인 스콧은 한달뒤에야 도달했고 그곳에 아문센이 남긴 물자를 자존심 때문에 보급하지 않고 돌아오다가 사망해 버린 것이죠.

 

5)  이후

- 북동항로의 개척

남극점의 최초정복으로 유명해지자 이제 북극으로 눈을 다시돌려 북동항로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 탐험은 탐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죽고 다쳐서 실패로 돌아갑니다.

 

- 북극 횡단 비행

북극 횡단 비행은 처음에는 실패 합니다. 지금하고는 비행기의 성능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1924년 다시 시도해서 북극 횡단 비행을합니다. 또한 비행선을 사서 북극점을 가로지르는 비행도 성공하게 되죠

비행사 자격까지 있던 아문센

6) 마지막

노빌레 라는 탐험가가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에 갔다가 조난당합니다. 아문센은 평소에 많은 준비를 해서 탐험에 임하던 탐험가였는데 조난 소식에 서둘렀던 것이죠. 결국 아문센도 조난을 당하게 됩니다. 노빌레는 살아 돌아오지만 아문센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탐험가 다운 최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는 영국은 1920년대 까지 스콧을 최초 발견자라고 가르쳤으며, 아문센이 사망했을 때 사망축하 파티까지 연 전력이 있습니다. 강대국이 참 쪼잔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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