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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dred Years’ War: Henry VI of England is crowned King of France at Notre Dame in Paris.

 

100년 전쟁: 영국의 왕 헨리 6세가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에서 왕위에 오르다.

 

100년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긴 전쟁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건을 설명하는 것 같네요 100년전쟁은 다음에 좀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헨리 6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9개월로 왕위에 오르는 헨리 6세

헨리 6

헨리 6세의 초상

1. 유년기

잉글랜드의 왕 헨리 5세와 프랑스 왕 샤를6세의 딸 발루아의 카트린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근데 헨리 5세가 곧 사망해 버리므로 1422년에 생후 9개월 째에 잉글랜드 왕이 됩니다. 2개월 후에 프랑스 왕 샤를 6세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트루아 조약에 의거해서 프랑스 왕까지 겸하게 됩니다. 이때가 겨우 생후 11개월 이었죠.

왕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니 이때가 외척이 득세할 수 밖에 없는 시기겠죠. 그래서 숙부인 베드퍼드 공작 존과 글러스터 공작 험프리가 왕권을 농락했습니다. 당연히 프랑스 쪽에서는 곱게 볼리가 없었습니다. 샤를 7세가 당장 트루아 조약에 비적법성을 근거하며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립니다. 이때 그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프랑스 랭스 탈환에 큰 역할을 합니다. 바로 잔 다르크죠. 그러니 잉글랜드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당장 1431년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프랑스 왕으로 대관식을 올려버립니다. 아마 잔 다르크의 랭스 탈환이 없었으면 넉넉하게 프랑스도 지배했을 겁니다. 하지만 랭스 탈환으로 인해 백년전쟁 자체의 물줄기가 바뀝니다.

프랑스 왕 대관식

2. 잔다르크

헨리 6세는 잔다르크와는 그야말로 악연입니다. 오를레앙의 함락으로 프랑스 전체의 패권을 쥘 수 있었는데 잔다르크와의 전투에서 연전연패 그리고 프랑스왕이라면 꼭 대관식을 열어야 하는 장소는 랭스마저 점령해 버렸으니 말이죠. 이제 트루아 조약까지 무효화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실질 지배도 불가능 하게 되구요.

결국 프랑스군의 배신당한 잔 다르크를 종교재판을 통해 마녀와 이단자로 몰아서 불태워버립니다. 물론 이때는 헨리 6세가 성년이 되기 전에 왕권을 가지고 있던 두 숙부가 벌인 짓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헨리 6세가 모든걸 지시했다고 나오지면 시기를 따져보면 그게 아니죠.

결국 잔다르크 하나로 인해 헨리 6세의 프랑스 왕 등극은 명분이 없어져 버렸고 오히려 반발만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3. 백년전쟁의 패배자가 되다

일단 두 나라의 왕이 되었지만 능력있는 지휘관의 사망에 정치 투쟁에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결국 잔다르크 죽음 이후의 전황을 뒤집진 못합니다. 게다가 프랑스인들이 잔다르크의 죽음을 계기로 더 일치단결하고 잔다르크를 배신한 부르고뉴파도 아라스 조약을 맺고 프랑스와 편을 먹고 파리를 샤를 7세에게 바쳐 버리빈다. 결국 칼레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어버리게 되죠. 이 전쟁에서 패배의 결과를 받아들여서 그런지 앙주들의 비옥한 토지들을 프랑스에 거저 바치게 되어 귀족들의 불만을 사게 되어 장미전쟁의 원인이 되어 버립니다. 역사가에 따라서는 칼레가 그 당시에 관세 수입이 짭짤한 항구라서 그 칼레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4. 비참한 최후

장미 전쟁중 에드워드 4세에 밀려서 런던탑에 유폐되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정신착란이 생겨서 이 정신착란으로 인해 이후의 인생이 불행해 지게 됩니다. 결국엔 에드워드 4세의 추종세력에 의해 암사라되고 맙니다. 이롱니해 랭커스터 왕조가 끝나버립니다. 이후에 장미 전쟁을 끝내고 헨리 7세가 튜더 왕가를 열게 되죠. 실제로 정신병과 광기는 외할아버지 샤를 6세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헨리 6세가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런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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