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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01, Argentine economic crisis: December riots: Riots erupt in Buenos Aires, Argentina.

 

2001년에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 : 12월의 폭동: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는 1980년대부터 시작이됩니다. 포클랜드군도의 영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모든게 시작되었고 2001년에 여러 요인이 겹쳐져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나락을 가게 되고 이에 따른 폭동이 시작된 날이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세계사이니 조금씩 알아가 보도록 합시다.

 

1. 경제위기의 배경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군도를 사이에 두고 150여 년간 대립하였고, 198242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군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전쟁이 터졌으나, 결국 영국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승자는 별 문제가 없지만 패전국은 문제가 되겠죠.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인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의 퇴진, 국민들의 민정이양요구, 위채 위기등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

 

우리나라도 겪었던 IMF의 지원으로 위기는 넘어갔지만 그때부터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1989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했다. 이때 도밍고 카발로 경제부 장관의 주도로 공기업 민영화 등을 거세게 밀어붙이면서, 국가 채무를 줄이고 경제구조도 개혁해서 한때 10%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킬라 효과라고 멕시코가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남미 전체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자 또다시 IMF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도 경제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문제는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게 됩니다. 이를 페론주의라고 하는데 결국 부채가 커지게 되었고 외채를 빌려 다시 매우는 돌려막기를 하는 악순한에 빠지게 되죠. 그리고 여기에 결정타가 터지게 됩니다.

일단 1997~1998년 사이에 신흥시장의 금융위기 우리나라도 포함됩니다. – 그리고 주력 수출품목이 농산물 가격의 하락 그리고 최대 교역국 브라질의 경제도 1999년초부터 위태롭게 바뀌게 됩니다. 결국 1999년도에 IMF에 대한 부채만 1280억 달러였으며, 실엽률은 20%였습니다. 그리고 2001년까지 상환해야할 돈이 250억 달러였죠. 그러나 이미 134억달러를 지원했던 IMF는 남미에 대한 추가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용평가 회사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도 잇따랐죠.

 

2. 1219일 폭동

폭동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의 명령에 따라 코랄 정책을 시행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찾는 현금의 양을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이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1219일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바로 다음날 사임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후임 대통령도 사임해 버리죠. 아르헨티나는 굉장히 혼란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큰 시위는 1219일 과 20일에 열린 시위였지만 결국 12월 내내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19일에는 델라 루아 대통령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검토했습니다. 그 검토된 대안은 군대 배치, 그리고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폭력적인 시위에 강제적인 진압을 하게되죠. 20일에도 마요광장에서 큰 시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피를 흘리게 됩니다. 36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를 마요광장의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폭동

 

폭동을 막는 경찰들

3. 폭동후

결국 잘 아시다시피 1220일에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고, 그 뒤를 이은 임시대통령은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를 선언했습니다. 결국 2002년에 선출된 대통령이 IMF 돈 빌리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한 IMF와의 협상에 간신히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걸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죠. 지금도 여전히 반정부 시위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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