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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74, A temple for Sol Invictus is dedicated in Rome by Emperor Aurelian.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로마에 솔인빅투스 사원이 봉헌되었다.

 

로마의 군인황제 시대때의 황제중 하나로 270년에 3월 전임 황제 클라우디우스 코티쿠스가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군인황제시대때 제국이 흔들린 위기를 수습하고 제국을 재건한 인물입니다. 특히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서 군인황제 시기 동안 로마제국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오던 이민족들을 일시적으로 섬멸하거나 격퇴시켰습니다. 그래서 동부의 팔미라 제국과 서부의 갈리아 제국도 힘으로 제압하여 군인황제시기때 개판이었던 로마 제국을 재통합 시킵니다. 제국의 질서유지를 위해 골몰 했지만 어이없는 일도 암살당하게 됩니다. 평가는 오래 살았더라면 로마제국이 훨씬 오래 유지되었을 꺼라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이 황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본후 솔 인빅투스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의 영상

1. 유년기

오래전 사람이다 보니 구체적인 탄생 시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214년또는 215년으로 추정됩니다. 유년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235년경 에 로마군에 입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레리아 누스 황제 휘하에서 게르만족에 맞서서 싸웠고 갈리에누스 황제가 창설한 기병 군단의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2. 장군으로써

오래된 기록에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었지만 이후의 기록을 보면 꽤 많은 전공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즉 그가 참여한 기병군단의 전과가 굉장히 좋았다는 것이죠.269년에 발칸 반도를 침략한 고트족을 거의 전멸시켜 버리죠.

 

3. 황제가 되다.

2703월에 고트족을 괴롭히던 전염병이 로마군에게도 펴져서 클라우디우스가 병에 걸려서 사망해 버립니다. 이후 원로원은 퀸틸루스를 새 황제로 추대했는데 문제는 아우렐리아누스는 다누비우스 전선에서 기병대장으로 있었습니다. 이때 아우렐리아누스 병사들의 지지아래 새 황제로 추대되는 방식으로 황제가 되는데 퀸틸루스의 군사적 업적이 형편 없음을 들어 로마의 군단들이 퀸틸루스를 불신임해버립니다. 퀸틸루스도 아우렐리아누스의 군사적인 역량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합니다. 자결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냥 들어가면 반역자가 되니 아우렐리아누스는 원로원을 압박합니다. 결국 군사력에 굴복한 원로원은 퀸틸루스 추대를 취소하게 되고 아우렐리아누스를 추대하게 됩니다.

 

4. 업적

근데 아무리 군사적 압박을 가해도 진실은 숨길 수 없는 법이죠. 하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계속해서 선전전을 합니다. 퀸틸루스가 자신의 형이 독살했다는 소문을 퍼트리는등 여러 노력을 다하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에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에게 도움을 구하고 간신히 안티오키아누스를 집정관에 지명하게 되면서 조금은 정통성문제를 잠재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업적을 조금 정리해 보면

-       군사적 업적

1)     반발족 격퇴

2)     알레만니족 격퇴 및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건설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현재 모습

 

빨간색이 아우렐레리아누스 방벽

 

 

 

3)     고트족 격퇴 및 다키아 속주 포기

4)     팔미라 제국 정복

5)     갈리아 제국 정복

군사적 업적을 상세하게 쓰면 너무 길어지므로 간단히 쓰자면 로마제국의 이전 영토를 회복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정치적 개혁

아우렐리아누스는 엄청난 군사적 업적을 남겼지만, 로마제국의 후임자들에게 남긴 최고의 업적은 바로 대대적인 내정 개혁과 황제권의 절대화였습니다. 로마의 전제군주정 아버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단 모든 혼란을 수습한 아우렐리아누스는 솔 인빅투스(무적의 태양신) 숭배의식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습니다.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이 태양신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신을 통해 하나로 단합하기를 바랬다는 것이죠. 274년에 아우구스투스 영묘 북부 지역에 1225일을 솔 인빅투스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즉 통함을 막기위한 구심점을 확실하게 둔 것이죠. 즉 스스로를 신격화 하지 않고 논란이 없을 만한 대상을 지정한 것이죠.

동전에 자신의 모습을 새기면서 데우스 에트 도미누스 나투스(Deus Et Dominus Natus)라는 문구를 덧붙이도록 하고, 황제의 모든 명령에는 엄청난 위엄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정신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구심점을 심어주기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암살로 인해 무산되어 버렸죠.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

6. 경제개혁

화폐개혁을 실시하여 인플레를 잡으려고 했고, 곡물가 인상과 황제들의 시혜책 폐단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곡물 가격을 가지고 장난치는 중간 업자들을 처벌하고, 국가가 직접 감독하는 방법으로 제분용 밀을 제빵업자 조합에 파는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또한 식료품, 생필품 조합들이 난립해 여러 권세가들과 장난치는 일을 막고자, 모조리 국가 통제 하에 두고 이들 조합들을 국가 관리 조합으로 만들어 관리해 버립니다. 또한 인기 영합 정책인 시민권자 전체에 무상 배급을 하던걸 막고, 무상 정기 배급자를 선정하여 매일 2파운드의 빵을 배급하게 하고, 기름(올리브유), 소금, 포도주를 기초생활금으로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7. 암살

암살의 근거는 늘 있죠 아우렐리아누스는 너무나 엄격한 황제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사이다라고 하겠지만 자신의 측근이던 고위관료든 동일한 관료들은 동일하게 처벌합니다. 자신과 다툼을 벌인 한 비서가 사형 서류를 위조해서 몇몇 관료들을 이름에 올리게 되자 관료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아우렐리아누스를 암살해 버립니다. 결국 끝이나는듯하게 보이던 3세기의 군인황제 시기는 더 유지가 되게 되어 버리죠. 제가 찾아본 다음의 유튜브를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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