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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드 지역

 

In 1481, Battle of Westbroek: Holland defeats troops of Utrecht.

 

1481년 웨스트브룩에서의 전투: 홀란드가 위트레흐트 군대를 격파하다.

 

좀 접하기 힘든 중세 네덜란드의 역사입니다. 홀란드 지역에서 홀란대 백작이라는 칭호를 누가 가질지를 두고 벌어진 후크와 코드 전쟁의 마지막 결판을 내는 전투중 하나입니다. 이 전투를 보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단순히 칭호를 가지고 싶어서 싸웠다 에서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지배 귀족들에 대한하여 벌인 권력 투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코드와 후크의 명칭에 대해서는 재미난 유래가 있는데, 코드는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바이에른 주의 모습을 딴 것이고 후크는 당연히 생선 대구 - 을 잡는 낚시바늘을 의미합니다. 이 전쟁에 대해 간략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 전쟁은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전투 입니다. 1350년부터 시작해서 1490년 까지 산발적인 전쟁은 계속되었죠.

 

 

1. 빌헬름 4세시대

빌헬름 4세는 통치를 그렇게 잘하던 왕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주변국과 전쟁만 벌이고 재정상태는 거의 신경을 안썼기 대문이죠. 이렇게 전쟁만 하던 빌헬름 4세는 위트레흐트의 주교와 전쟁중에 사망합니다. 그래서 위트레흐트의 주교는 빌헬름4세의 대부분의 군대를 제압하고 배상금도 받아냅니다.

 

2. 벨헬름 4세 이후

굉장히 여러명의 후보가 있었으나 빌헬름 4세의 맏언니인 마거릿 2세가 일단 계승을 합니다. 일단 위트레흐트와 휴전을 하고 자신의 영지를 안정을 시킵니다.

 

3. 네덜란드와 질랜드의 분쟁

하지만 자신의 작은 아들은 홀란드와 질랜드에서 제대로 통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홀란드와 질란드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여기에 위트레흐트와의 전쟁도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휴전도 끝났죠. 그리고 여러 혼란한 작은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거릿을 중심으로 한 후크동맹이 생겨나고, 여기에 반대되는 귀족들이 코드 동맹을 만들게 됩니다. 마거릿은 좀더 안정을 위해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와 협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 질랜드, 프리슬란트를 장악하고 이 지역의 임시 영유권을 주는 것으로 협상을 했죠. 근데 전쟁은 코드파 쪽에 유리하게 전개가 되었고, 코드쪽이 많은 성을 장악합니다.

공방전

4. 후크파와 코드파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몇번식의 휴전은 있었지만 코드파에게 전쟁은 유리하게 전개가 됩니다. 코드파가 영향력을 잡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후크저항이 위트레흐트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가 웨스트 브룩 전투 그리고 이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결정지은 위트레흐트 공방전(1483) 이후 코드가 승리하게 됩니다.

최후의 전투

5. 마지막

이제 최후의 후크가문의 반란이 1482년에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1490년에 마침내 마지막으로 진압이 되게 됩니다.

 

6. 결론

결국 사상이 다른 두 파가 있으면 하나가 없어질 때 까지 싸우는게 인간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피를 흘리고서야 코드파가 완전히 정권을 잡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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