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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066, Edward the Confessor dies childless, sparking a succession crisis that will eventually lead to the Norman conquest of England.

 

1066년 이날, 참회왕 에드워드가 자식없이 죽었다. 이는 계승전쟁을 불러일으켜 결국 잉글랜드에서 노르만왕조의 지배가 시작되게 되었다.

 

오늘은 참회왕 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서 실질적인 마지막 앵글로색슨 출신 왕이었습니다. 앵글로색슨이라는 것은 현재 영국 본토에 살고 있는 본토인의 직적접이 기원이 된 인종으로, 5세기 정도에 브리튼 섬에 이주한 게르만족의 일부분을 뜻합니다. 즉 참회왕 에드워드 이후로 이 본토 출신의 왕의 혈통이 끊기고 노르만족 계통의 왕조가 잉글랜드를 지배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참회왕 에드워드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많이 갈리는데, 참회왕이라는 이름처럼 신앙심만 찾은 왕이었다는 평가도 있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노르만 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워서 그렇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신앙심이 매우 강력한 왕으로써, 영국하면 떠오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었습니다. 물론 왕의 치세때 완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더 개축을 하게 되죠. 나중에 성인으로 추대됩니다. 간략하게 이 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1. 어린 시절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시기가 잉글랜드에 바이킹과 덴마크의 침략이 잦았을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참회왕 에드워드는 덴마크 국왕인 스벤1세와 계속 싸우게 되었고, 그들이 죽었을때 아들끼리도 대를 이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에드워드의 형인 에드먼즈 2세가 죽었습니다. 근데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덴마크의 스벤 1세의 아들인 크누트와 재혼하게….. 됩니다.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네요. 그리고 그 크누트는 에드워드의 또 다른 형을 처해 버렸습니다. 이제 에드워드가 유일한 앵글로 색슨의 왕위 후계자가 되어 버리죠.

 

2. 왕으로 즉위하다

이때까지도 전쟁은 잉글랜드가 불리하고 덴마크가 거의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에 에드워드의 거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 노르망디에 피신해 있던걸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때 아무도 에드워드가 왕이 될 것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의 친모조차도 무시했으니까요. 근데 크누트왕이 엄청난 실책을 합니다. 마치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같은 실책을 하죠. 이전부인이 낳은 자식을 싸악 무시하고 새로 결혼한 에드워드의 엄마와의 사이에 새로 낳은 하레크누드를 새로운 왕으로 삼으로 했던 거죠. 당연히 사후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에서도 왕자의 난이 벌어 졌었죠. 결국 전처의 아들중 하나인 헤럴드 1세가 잉글랜드를 다스리게 되지만 3년만에 갑자기 급사하게되고, 에드워드 어머니의 새아들인 하레크누드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지만 1년만에 병사하게 되어, 유력한 왕위 계승자로 에드워드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유일한 앵글로 색슨족의 왕이라 국민들에게 열렬히 지지도 받았고, 그 당시 귀족의 핵심이었단 고드윈의 지지도 받아 1043년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핵심 귀족의 지지도 받았고, 고드윈의 딸 에디스와 결혼도 함으로써 지위는 공고해 졌습니다.

 

3. 하늘의 태양이 두개일 수 있나

하늘에 태양이 둘 일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고드윈과 에드워드의 한판 전쟁은 불가피 했죠. 사소한 시비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간의 지지세를 바탕으로 병력을 소집했습니다. 근데 한판 시원하게 붙지는 않고 서로 미적대었습니다. 이로인해 불리해진건 고드윈이었죠. 왕에게 대항하겠다고 군대를 일으켰는데 싸우지를 않으니 군대의 사기가 떨어져버린거죠. 결국 고드윈은 아일랜드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근데 여기에서도 에드워드왕이 실책을 하게 되는데, 앵글로 색슨인이 아니라 자신을 도운 노르만인들을 중용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1년후 고드윈이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오자 에드워드를 지지했던 귀족들이 이제는 고드윈을 지지하게 됩니다. 왕은 다시 고드윈의 백작지위를 인정하고 내쳤던 자신의 아내인 고드윈의 딸도 다시 불러들이게 됩니다.

 

4. 왕의 권위를 잃고 정치를 멀리하다

고드윈은 사망하지만 고드윈의 아들들이 잉글랜드를 실질적으로 점령하게 되고 에드워드 왕은 실권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못하는 왕이 되어 버립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사냥이나 하고, 더더욱 신앙심을 두껍게 해 나갔죠.

 

5. 사후

에드워드 왕은 후계가 없었고, 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왕이 피신해 있을 때 후계를 약속했다는 것으로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1세는 자신이 후계라고 주장했고, 고드윈의 아들인 헤럴드 2세세 죽을 때 자신에게 잉글랜드를 부탁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럴드 2세가 왕위에 오르지만 이제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1세와의 한판 전투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침공 즉 헤이스팅스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에드워드왕의 옥좌

 

현재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6. 평가

혈족의 문제는 외국이나 국내나 다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후계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항상 다툼이 있어왔고 누구나 만족하는 계승룰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서양도 적장자에 대한 유지가 제일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서양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군요 새로 들어온 아내의 아들을 후계로 지목했을때는 문제가 항상 있어왔습니다. 괜히 여러 왕국에서 계승법을 만들어 둔게 아니죠. 또한 신앙심을 존경받던 에드워드가 결국 권력을 놓치는 과정에 항상 자신을 다스리는 국민의 여론을 간과한 점도 없지 않습니다. 항상 주변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고, 정세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등돌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영국왕의 대관식에 쓰이는 에드워드의 왕관

 

에드워드의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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