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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393 Roman emperor Theodosius I proclaims his eight-year-old son Honorius co-emperor.

 

393년 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의 8살난 아들 호노리우스를 공동황제로 지명하다.

 

로마제국의 50대 황제이자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시조인 테오도시우스 1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참고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어로 하느님이 준 사람 즉 하느님이 내린 사람이라는 듯입니다. 아마 대부분 교과서에서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고 이교도를 탄압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유능한 군인 황제이자, 통일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입니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와 같은 능력을 가진 황제로 대략 100년후 마르키아누스가 나타날때까지 무능한 황제들이 연속으로 난립하여 결국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게 됩니다.

테오도시우스 1

1. 생애

테오도시우스 1세의 집안은 아버지 시절부터 제국의 핵심 군인으로써 막 자라난 신흥가문 이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도 황제 즉위 전까지는 직업군인 장교를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으니까 테오도시우스도 따라다니면서 군업무를 배워나갔습니다. 그리고 358년 브리타니아 일대가 색슨 족과 스콧 족 등의 민족으로부터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와 함께 출전 공을 세우고 374년 모이시아의 장관으로 부임하여 도나우 강 북쪽의 고트족과 반달족을 제어하는등 성공적인 커리아를 쌓아 나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떠오르는 신흥세력은 비호해줄 주변 세력이 약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아니나다를까 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버지는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처형됩니다. 그러자 테오도시우스 1세는 자신의 근거지인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2. 동로마 황제로 즉위하다

이전에도 다룬적이 있지만 378년 히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발렌스가 고트족의 연합군에 대패당하고 전사해 버립니다. 동쪽이 거의 마비상태가 되어 버리죠 서로마 제국의 안정에도 정신없었던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테오도시우스를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테오도시우스의 군사적 역량과 그 집안의 명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여튼 황제가 되고 나서 동로마 제국 야전군의 재편성을 성공하고, 이이제이 전술로써 서로 싸우게 하는 만큼 상당수 적군을 아군화 시켜버립니다. 하지만 싸움만 잘하면 언제는 패할 수 도 있는법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사산조와의 분쟁지역인 아르메니아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여 동로마 제국의 국경을 안정화 시킵니다.

 

3. 계속되는 전쟁

 

379년 이후 외세와의 여러 전쟁에서 승전보를 울리며 381년 고트족의 대왕 아타나리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트리키아 속주에 고트족을 대거 이주시키게 됩니다. 383년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중왕 샤푸르 3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제 동로마의 국경이 모두 안정되어서 통치를 할까 했더니….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그라티아누스가 마그누스 막시무스에게 살해당하면서 이제는 내전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계소된 전쟁으로 군비가 약했던 시기에 바로 내전에 들어가기 보다는 마그누스막시무스와 타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387년 동고트 족을 전멸시키다시피 하면서 정세가 안정되고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388년 사바 강 유역에서 막시무스를 격파하고 발렌티니아 누스 2세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바지황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과 서 양쪽을 다 다스린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4. 테살로니카 칙령

 

테오도시우스는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국교로 삼고 391년 행정법으로 상세한 내용을 규정했습니다. 공식적인 이교도 박해 기록은 없지만 비그리스도인들의 공직 진출이 금지되었습니다. 여튼 교묘한 비그리스도인 탄압 정책이 계속되자 392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 장군에거 살해되고, 아르보가스트가 그리스도교 탄압을 천명하자 이에 개입하게 되빈다. 394년 프리기두스 전투에서 반란군을 싹쓸어버리면서 반란을 제압해 버립니다.

 

5. 황제로서의 능력

 

율리아누스이래도 발렌스도 계승했던 감세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가격 통제 정책을 폐지하여 농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등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쳐서 경제 상태를 크게 호전시킵니다. 지휘관으로의 자질은 실전을 뛰는 군사적 재능 보다는 부대관리나 군정, 군수, 보급 이런쪽의 능력치가 높았습니다.

 

6. 여러  폭동

 

1) 안티오키아 폭동

안티오키아

안티오키아의 대주교가 세 라마이나 나와 대립하자 문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1사람이 옳다고 결론을 내려줬다는데 있습니다. 당연히 나머지 2/3은 불만을 품었습니다. 여기에 고트족과의 전쟁 및 평화비용까지 세금으로 붙어서 불만이 점점더 커지게 됩니다. 여기에 즉위 10주년 기념 축제에 자발적이라고 쓰고 강제적이라고 읽는 세금을 한번 더 부과해 버리자 불만이 폭발하여 안티오키아를 다스리는 관청으로 가서 탄원하지만 관리들이 제대로 유연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탄압하자 폭발해 버립니다. 폭동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사건보고서를 받아든 테오도시우스는 안티오키아의 지위를 낮추고, 로마 속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고, 목욕탕, 원형경기장, 극장을 폐쇄조치하고 관련자들을 고문했습니다. 하지만 더 심해지기 전에 대주교 플라비우스가 찾아와서 자비를 간청하자 테오도시우스가 사면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2) 테살로니카 폭동

테살로니카

보테리크 장군의 노에중 빼어난 미모를 가진 미소년(?) 노예를 전차를 모는 전사 하나가 건드렸다하여 심문했는데 이를 계기기로 폭동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를 진압할 병력이 이탈리아 전쟁으로 빠져 나가서 보테리크 장군와 그의 부관들은 민중에게 살해당하고 온 거리를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자 테오도시우스는 음악회를 열겠다고 경기장에 모이게 한 뒤에 모인 군중을 하나도 남김없이 학살해 버립니다.

 

6. 사망

아르카디우스
호노리우

 

3951,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지병인 수종으로 50세도 안돼어서 사망했습니다. 후계작업을 마무리하기 전에 사망해서 그 아들이 제대로 황제 수업도 받지 못하고 승계하게 됩니다. 근데 이 두 아들이 너무나 무능한 황제였다는 점이죠. 황제들이 무능하면?? 이제 권신들의 시대가 됩니다. 여튼 두 아들이 서방황제, 동방황제로 분할 통치제를 계속해서 이어나갑니다. 아르카디우스가 동방구역을 담당했고, 호노리우스가 서방 구역 담당으로 분담해서 통치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7. 평가

로마의 3재제중 한명입니다. 콘스탄티누스 1, 테오도시우스 1, 유스티니아누스 1세중에서 제일 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엄청나게 특출한 능력이 있지도 않지만 대규모 숙청을 없었으며, 재정붕괴를 초래한 적도 없었습니다. 성격은 급했지만 직언하는 신하들에게는 관대했습니다. 또한 손자인 테오도시우스 2세의 업적인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나 테오도시우스 법전이 마지 테오도시우스 1세의 업적인듯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실제는 그리스도교 국교화가 유일한 가시적인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한 로마제국의 황제라 당연히 친 그리스도교 역사학자들이 물고빨고 했겠죠. 요즘에 이로인해 비난하는사람도 꽤 늘고 있는 추세죠.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테오도시우스1세 황제

8. 여담

 

게임에서 등장하는 델포이 신전을 없앤 인물로 유명합니다. 델포이 신전의 예언자는 모든게 끝났다고 선언하고 다시는 신전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후에, 그리스 성소에서 열리던 올림픽이 이교도의 축제로 간주해서 폐지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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